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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영화의 마지막 편이 이렇게 쓸쓸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로건은 17년 동안 울버린을 연기해온 휴 잭맨의 마지막 작품으로, 화려한 전투도 세계를 구하는 임무도 없이 늙고 지친 한 남자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간다. 처음엔 익숙한 히어로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가, 피 냄새 나는 서부극 같은 분위기에 꽤 당황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면 이 거칠고 황량한 분위기가 한 영웅에게 바치는 가장 정직한 작별 인사였다는 게 느껴진다. 히어로 영화의 틀을 빌려 늙음과 죽음, 그리고 물려준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문 작품이다.
캐릭터해석: 살아갈 이유를 잃은 남자
2029년, 로건은 더 이상 예전의 울버린이 아니다. 상처가 금방 아물던 치유 능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고, 몸속의 금속은 오히려 그를 서서히 좀먹어간다. 그는 국경 근처에서 리무진 운전을 하며 돈을 모으고, 버려진 공장에 숨겨둔 찰스 자비에를 돌본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정신을 지녔던 찰스는 이제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노인이 되었다. 새삼 이 설정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죽지 않는 존재로 그려져온 영웅에게, 영화는 가장 먼저 늙음을 안긴다. 그리고 그 늙음 앞에서 로건은 영웅이 아니라 지친 간병인이다. 약을 구하러 다니고, 찰스의 투정을 받아주고, 언젠가 둘이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 조용히 사라지는 것만을 꿈꾼다. 불멸이라 믿었던 힘이 무너지자 비로소 드러난 건, 사실 그가 오래전부터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구하던 손으로 이제 겨우 한 사람을 붙들고 있는 영웅. 그 초라함이 이상하게도 이전 어느 편보다 인간적이다.
요약: 치유 능력이 약해지고 몸속 금속에 잠식당한 로건은 영웅이 아니라 노쇠한 찰스를 돌보는 지친 간병인이 되었고, 불멸의 힘이 무너지자 오래전 삶의 이유를 잃은 모습이 드러난다.
세계관: 영웅이 사라진 시대
이 영화 속 세상에서 돌연변이는 거의 사라졌다. 25년 가까이 새로운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았고, 한때 세상을 지키던 엑스맨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흥미로운 장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엑스맨 만화책이다. 로건을 찾아온 소녀 로라는 만화 속 에덴이라는 안식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데, 로건은 그 만화의 절반은 거짓말이라며 코웃음 친다. 현실은 만화처럼 영웅적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실제로 죽어갔다고. 내가 보기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세계관을 설명해준다. 이전 시리즈가 그려온 화려한 영웅담은, 이 세계에서 과장되고 미화된 만화책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남은 건 약해진 몸과 황량한 사막, 돌연변이 아이들을 무기로 만들어온 거대 기업의 추격뿐이다. 영화가 서부극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로라가 찰스와 함께 호텔방 텔레비전으로 서부 영화 셰인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웅의 시대가 끝난 땅에서 총잡이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그 영화처럼, 로건도 신화가 끝난 자리에서 한 인간으로 남는다.
요약: 돌연변이가 사라진 세계에서 엑스맨의 영웅담은 미화된 만화책으로만 남아 있으며, 영화는 신화가 끝난 황량한 땅에서 한 인간으로 남은 로건을 서부극처럼 그려낸다.
메시지: 영웅의 유산
로라는 로건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아이로, 그와 똑같이 손등에서 금속 발톱이 튀어나오고 거칠게 싸운다. 처음 로건은 이 아이를 짐처럼 여기며 떠맡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찰스를 잃고, 로라와 함께 추격을 피해 북쪽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조금씩 아이에게 마음을 연다. 마지막 전투에서 로건은 자신의 복제품인 젊은 살인 병기와 맞서다 치명상을 입는다. 숨을 거두기 직전, 로라가 처음으로 그를 아빠라고 부르고, 로건은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쓸쓸하게도 그는 평생 처음 가족을 얻은 순간에 떠난다. 로라는 로건의 무덤 앞에서 셰인의 대사를 읊는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걸 안고 살아갈 수 없다는, 총잡이의 고백 같은 대사다. 그리고 무덤 위 십자가를 비스듬히 기울여 엑스자 모양으로 바꿔놓는다. 영웅의 이름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장면이다. 폭력의 대물림이 아니라, 폭력을 넘어서는 삶을 살라는 부탁이 담긴 유산. 로건이 끝내 남긴 건 발톱이 아니라 그 부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