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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꿈꾸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청년, 어린 시절 동네 친구였던 여자, 그리고 그녀가 여행에서 데려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자 남자. 이창동 감독의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바탕으로, 세 사람 사이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미스터리처럼 그려낸다. 누군가 사라지지만 사건이라 부를 만한 증거는 없고, 의심은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처음 봤을 땐 끝까지 무엇 하나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모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다.
심리구조: 과녁 없는 열패감
종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폭행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아버지 대신 파주의 시골집에서 송아지를 돌보며,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의 앞에 해미가 나타나고,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났다는 벤이 그녀 곁에 선다. 벤은 고급 외제차를 몰고, 강남의 넓은 집에 살며,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는지 물으면 그냥 논다고 웃어넘기는 남자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종수의 감정은 한 번도 제대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 벤 앞에서 그는 늘 말을 아끼고, 불편함을 삼키고, 어색하게 웃는다. 그런데 그 억눌린 감정이 쌓일수록 화면 전체가 조금씩 뜨거워진다. 종수가 벤에게 느끼는 건 질투이기도 하고, 계급에 대한 열패감이기도 하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분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분노에 분명한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벤은 종수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실체 없는 적을 향해 끓어오르는 감정, 그게 종수라는 청년의 내면이다.
요약: 막막한 현실 속에 사는 종수는 부유하고 여유로운 벤 앞에서 질투와 열패감, 설명할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그 감정이 점점 끓어오른다.
메타포: 보이지 않는 진실
해미는 처음 종수와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판토마임을 보여준다. 손에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며 보이지 않는 귤을 까서 먹는 시늉을 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여는 열쇠가 된다. 가만 보면 이 영화 속 거의 모든 것이 이 귤처럼 존재한다. 해미가 키운다는 고양이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어린 시절 해미가 빠졌다는 우물은 해미의 가족조차 그런 건 없었다고 말한다. 벤이 두 달에 한 번씩 태운다는 비닐하우스도, 종수가 매일 동네를 뒤지며 찾아다녀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는 걸 잊으면 존재하게 되는 것들. 그리고 해미 자신도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다. 종수는 사라진 해미를 쫓으며 이 보이지 않는 귤들을 하나씩 확인하려 하지만, 확인할수록 모든 게 더 흐릿해진다. 결국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없다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건 아니였을까... 종수도, 관객도 그 귤을 쥐고 있다고 믿으며 끝까지 따라간다.
요약: 없다는 걸 잊으면 된다는 해미의 귤 판토마임처럼, 보이지 않는 고양이와 우물, 비닐하우스까지 영화 속 모든 것이 확인할 수 없는 채 존재하며 진실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결말해석: 현실인가, 소설인가
해미가 사라진 뒤, 종수는 벤의 집 화장실 서랍에서 해미의 것으로 보이는 분홍 손목시계를 발견한다. 벤이 새로 들였다는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 이름을 부르자 종수에게 다가온다. 모든 정황이 벤을 가리키지만, 그 무엇도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결국 종수는 벤을 인적 없는 들판으로 불러내 칼로 찌르고, 그의 차와 함께 불태운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불 속에 던진 채, 벌거벗은 몸으로 트럭을 몰고 떠난다. 섬뜩한 건 이 결말이 진실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장면 바로 앞에서, 종수는 해미의 방에 앉아 처음으로 노트북 앞에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 결말은 종수가 실제로 저지른 일일 수도 있지만, 그가 마침내 쓰기 시작한 소설 속 이야기일 수도 있다. 벤이 정말 해미를 죽였는지, 종수의 분노가 만들어낸 망상이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답하지 않는다. 다만 실체를 찾지 못한 분노가 끝내 불길이 되어버린 순간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불은 복수라기보다, 한 청년이 자기 안의 무언가를 태워버리는 장면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