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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계약비화, 검열비화, 재평가)

J Movie Log 2026. 9. 14. 14:50

목차


     

     

    시민 케인 (1941)

     

     

    시민 케인은 영화사에서 가장 자주 첫 손에 꼽히는 작품인데도, 정작 개봉 당시엔 이 정도로 평가받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완성된 영화 자체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리고 나온 뒤에 겪은 과정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감독에게 주어진 이례적인 권한, 개봉을 막으려 했던 거대 언론사, 그리고 한참을 잊혔다가 되살아난 평가까지 짚어본다.

     

    계약비화: 다 맡겨버린 계약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을 만들 당시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그런데 RKO와 맺은 계약 조건을 보면 이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각본, 감독, 제작, 주연까지 전부 맡았고, 게다가 최종 편집권까지 보장받았다. 스튜디오가 신인 감독에게 이 정도 재량을 준 건 그 시절 할리우드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업계 안에서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많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이야 감독 중심 영화가 익숙하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이 절대적이던 당시에 이런 계약이 성사됐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물론 그 재량을 웰스가 어떻게 썼는지도 중요하다. 그는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을 통해 일부 청취자들이 실제 화성인의 침공으로 오인해 소동이 벌어질 정도로 이미 유명해진 인물이었는데, 그 유명세를 그대로 영화 쪽으로 끌고 와서 각본 단계부터 실존 인물을 빗댄 이야기를 밀어붙였다. 이 자유가 영화의 개성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개봉 이후 벌어질 갈등의 불씨도 이미 여기서 심겨 있었던 셈이다. 웰스는 영화 연출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기존 할리우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이끌던 라디오·연극 극단 머큐리 시어터 단원들을 그대로 데려와 주요 배역에 앉혔다.


    요약: 스물다섯 살의 오슨 웰스는 각본·감독·제작·주연에 최종 편집권까지 보장받는, 당시로선 전례 없는 계약을 맺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검열비화: 신문에서 지워진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 케인은 사실상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허스트 본인도 이 사실을 눈치챘고, 개봉 전부터 영화 내용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허스트 소유의 신문들은 이 영화에 대한 언급 자체를 지면에서 금지했고, 그의 영향력 아래 있던 대형 극장 체인들도 상영을 거부했다. 심지어 영화의 네거티브 필름 자체를 사들여서 없애버리려는 시도까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고, 허스트 계열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자기 칼럼에서 다시는 다루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내가 보기엔 이 정도 압박이면 지금 기준으로도 언론과 자본이 콘텐츠 하나를 지우려고 한 상당히 노골적인 사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개봉 이듬해 봄까지 집계된 손실만 15만 달러를 넘었고, 허스트 쪽 압박으로 상영을 거부한 극장이 수백 곳에 달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호평이 이어졌지만, 정작 극장에 걸리지 못하니 관객들이 접할 기회 자체가 줄었고, 제작비도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 완성도와 흥행이 반드시 같이 가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흔치 않을 것 같다.


    요약: 케인의 모델이 된 언론 재벌 허스트는 자신의 신문에서 영화 언급을 금지시키고 극장 상영까지 막아, 결국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할 정도의 손실을 냈다.


    재평가: 50년 동안 1위였다

     

    흥행에서 밀린 시민 케인은 한동안 거의 잊힌 영화가 됐다. 그런데 반전은 대서양 건너에서 시작됐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재발견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1956년 재개봉을 거치며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다. 특히 앙드레 바쟁 같은 평론가는 이 영화의 딥포커스 촬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옹호했고, 이후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영화연구소가 십 년마다 발표하는 역대 최고 영화 순위에서는 1962년부터 2002년까지 다섯 번의 조사에서 전부 1위를 차지했다. 오십 년 동안 흔들리지 않은 1위였던 셈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홉 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작품상은 받지 못하고 각본상 하나만 챙겼다. 지금 와서 보면 이 결과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그만큼 개봉 당시 분위기가 이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말에 등장하는 로즈버드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이다. 극 중 기자는 끝내 그 의미를 알아내지 못하고, 답은 관객만 보게 된다. 완성 당시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영화가,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하나를 남기고 결국 시간이 지나 스스로 답을 찾은 셈이다.


    요약: 개봉 당시엔 흥행에 참패했던 이 영화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재발견된 뒤, 영국영화연구소 순위에서 1962년부터 2002년까지 50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