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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딸을 챙기며 무난하게 살아가던 주부 임나미는 어느 날 병원에서 고등학교 시절 단짝 춘화와 우연히 재회한다. 그런데 춘화는 암으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단 하나, 학창 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칠공주 써니 멤버들을 다시 만나는 것.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나미가 옛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현재와, 1980년대 여고 시절의 추억을 오가며 진행된다. 처음엔 80년대 복고 감성과 유쾌한 에피소드에 웃으며 봤다. 그런데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갈수록, 그 시절 반짝이던 소녀들이 어른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가 웃음보다 더 크게 남는다.
서사구조: 소녀와 어른이 마주 보는 시간
이 영화는 두 개의 시간이 서로를 비추며 흘러간다. 1980년대, 전라도에서 서울로 전학 온 나미는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다가 춘화가 이끄는 써니 무리에 들어간다. 일곱 명의 소녀들은 다른 학교 무리와 패싸움을 벌이고,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재, 나미는 흥신소의 도움을 받아 그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흥미로운 건 두 시간대가 바뀌는 방식이다. 과거의 장면이 끝나는 자리에서 같은 인물의 현재 얼굴이 이어지고, 현재의 나미가 걷는 골목이 과거의 풍경으로 바뀐다. 어른이 된 나미가 학창 시절의 자신과 같은 공간에 서 있는 장면도 나온다. 다시 보니 이 연출이 영화의 핵심을 짚는다. 과거와 현재는 따로 떨어진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시간이라는 것. 소녀 시절의 나미는 사라진 게 아니라, 어른 나미 안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요약: 1980년대 여고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구조 속에서 같은 공간에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겹쳐지며, 친구들을 찾는 여정은 어른 안에 여전히 살아 있던 소녀 시절의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 된다.
성장서사: 반짝이던 소녀들의 지금
나미가 다시 찾은 친구들의 삶은 그 시절 꿈과 많이 다르다. 쌍꺼풀 수술을 꿈꾸던 장미는 실적에 쫓기는 보험 설계사가 되었고, 욕쟁이 진희는 우아한 척하며 살지만 집안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문학소녀였던 금옥은 시집살이에 지쳐 있고, 미스코리아를 꿈꾸던 복희는 삶의 밑바닥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반짝이던 소녀들은 각자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모습을 실패로만 그리지 않는다. 나미가 찾아가 손을 내밀자, 친구들은 하나둘 그 시절의 웃음을 되찾는다. 함께 수다를 떨고, 옛날 노래를 부르고, 나미의 딸을 괴롭힌 아이들을 혼내주러 함께 나서기도 한다. 이건 좀 의외였는데, 영화가 그리는 성장은 소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어른이 다시 소녀 시절의 용기를 꺼내는 과정에 가깝다. 삶에 치여 잊고 있던 대담함과 의리를 다시 손에 쥐는 것.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여전히 자랄 수 있다는 걸, 이 중년의 친구들이 보여준다.
요약: 꿈과 다른 삶을 살던 써니 멤버들은 나미가 손을 내밀자 그 시절의 웃음과 대담함을 되찾으며, 영화는 어른이 다시 소녀 시절의 용기를 꺼내는 또 다른 성장을 그린다.
결말: 장례식장에서 춘 춤
결국 춘화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식장에 써니 멤버들이 모인다. 그런데 춘화는 마지막 부탁 하나를 남겼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친구들이 함께 춤을 춰달라는 것. 상복을 입은 중년의 여인들이 영정 사진 앞에 서서, 고등학생 시절 축제에서 추려던 그 춤을 춘다. 써니의 노래가 흐르고, 처음엔 어색하던 몸짓이 점점 신나게 바뀐다. 그 순간 마지막 멤버인 수지가 조용히 장례식장에 들어선다. 학창 시절 축제 날 벌어진 사고로 얼굴에 상처를 입은 뒤 친구들 곁을 떠났던 그녀가, 오랜 시간 끝에 돌아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벌어진다. 슬픔의 자리에서 웃음과 춤이 터져 나오는 이 결말은, 춘화가 친구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마음 그 자체다. 울지 말고 그 시절처럼 웃으라는 것. 춘화는 유언으로 친구들 각자에게 필요한 도움까지 남기고 떠난다. 끝까지 리더였던 셈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흩어졌던 일곱 명을 다시 하나로 묶어놓는다. 써니라는 이름처럼,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햇살이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