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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 중에 이 정도로 첫 대면 장면이 유명한 작품도 드물다. 렉터와 스탈링이 처음 마주 보는 그 짧은 몇 분이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그 장면을 다시 보다가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았다.
수상기록: 16분짜리 오스카
한니발 렉터는 영화 전체에서 등장 시간이 16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앤서니 홉킨스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까지 5개 부문을 모두 가져간 그랜드슬램 영화이기도 한데, 오스카 역사를 통틀어 이 다섯 부문을 모두 휩쓴 작품은 지금까지 단 세 편뿐이라고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례적인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오히려 이 캐릭터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등장 시간이 짧다는 건 그만큼 매 장면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는 뜻이고, 홉킨스는 그 짧은 순간들 안에서 렉터라는 인물의 지적이고 섬뜩한 이미지를 완성해 버렸다. 한편 조디 포스터는 이 배역을 간절히 원했는데, 여성이 다른 여성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설정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피해자 역할을 많이 맡아온 터라 이번에는 누군가를 구하는 쪽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로 그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은 두 번째 배우가 됐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심지어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무서운 배우가 있다는 걸 이 영화로 처음 실감했다. 이 영화 속 클라리스 캐릭터는 훗날 엑스파일의 스컬리 요원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영상 매체 속 여성 수사관의 이미지를 통째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약: 안소니 홉킨스는 단 16분 출연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 영화는 주요 5개 부문을 모두 휩쓴 그랜드슬램 작품이 됐다.
연기: 대본에 없던 조롱
렉터와 스탈링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서, 렉터가 스탈링의 옷차림과 억양을 훑어보며 출신을 비웃는 대사는 원작 소설에 있던 내용이지만 조롱하는 말투와 뉘앙스 자체는 홉킨스의 즉흥 연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리허설 때는 없던 대사와 소리가 실제 촬영에서 튀어나오자 조디 포스터는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 참고로 극 중 연쇄살인마의 별명인 버펄로 빌은 형사들이 붙인 이름인데, 실제로는 19세기에 수천 마리의 들소를 사냥했던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원작자 토마스 해리스는 소설을 쓰기 위해 실제 FBI 프로파일러들을 취재했는데, 정작 자문에 참여했던 프로파일러는 훈련생을 실제 수사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등 몇 가지 설정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건 좀 의외였는데, 두 배우 사이의 긴장감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던 셈이고, 현실 고증마저 완벽하진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롭다. 픽션이 완벽한 사실 위에 세워질 필요는 없다는 걸, 이 영화가 오히려 증명해 준 셈이다.
요약: 렉터가 스탈링을 조롱하는 장면의 말투는 대본에 없던 즉흥 연기였고, 살인마의 별명인 버펄로 빌은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촬영비화: 촬영 후 항의 소동
그 장면을 찍고 난 뒤 조디 포스터는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따져 물었다고 한다. 모니터로 자신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홉킨스의 즉흥 연기 때문에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분노는 배우 조디 포스터의 것이라기보다는, 극 중 클라리스로서 느낀 감정에 더 가까웠다는 후일담도 있다. 결국 두 사람은 화해했고, 포스터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끌어내 준 홉킨스에게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렉터가 착용했던 그 독특한 입가리개 소품은 앤서니 홉킨스의 사인이 들어간 진품으로, 지금은 뜻밖에도 제주도의 한 리조트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정도의 몰입도가 있었기에 두 사람의 대면 장면이 스릴러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 된 것 같다. 배우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상대 배우까지 진짜로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 볼 때마다 새삼 소름이 돋는다.
요약: 조디 포스터는 촬영 직후 항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홉킨스에게 고마워했고, 렉터의 입가리개 소품은 지금 제주도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