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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는 1939년에 나온 영화인데도 여전히 판타지 영화의 원형처럼 언급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정작 스크린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사고로 배역이 바뀐 사연, 소품 색깔 하나를 둘러싼 결정, 하마터면 잘릴 뻔한 노래까지 짚어본다.
제작비화: 배역을 바꾼 대가
양철나무꾼 역은 원래 버디 엡슨이라는 배우가 맡을 예정이었다. 처음엔 허수아비 역으로 캐스팅됐는데, 허수아비를 연기하기로 했던 레이 볼저가 제작자를 설득해서 두 사람의 역할이 통째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촬영 열흘 만에 문제가 생겼다. 분장에 쓰인 알루미늄 가루를 들이마신 엡슨이 급성 중독 반응을 일으켜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갔고, 결국 배역은 잭 헤일리에게 넘어갔다. 이후 분장 방식도 가루 대신 페이스트 형태로 바꿔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꽤 충격적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안전사고인데, 그 시절 할리우드 제작 현장이 얼마나 무모하게 돌아갔는지 보여주는 사례 같았다. 감독도 한 번에 정해진 게 아니었다. 리처드 소프가 먼저 맡았다가 진행이 너무 급하다는 이유로 교체됐고, 조지 큐커가 잠깐 자문 역할을 하다가 빅터 플레밍이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이 와중에 플레밍마저 촬영 도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쪽으로 넘어가면서, 마지막 열흘은 킹 비더 감독이 마무리를 지었다. 이렇게 손이 여러 번 바뀐 영화치고 완성도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약: 양철나무꾼 역을 맡았던 버디 엡슨이 분장 알루미늄 가루에 중독돼 실려가면서 배역이 잭 헤일리에게 넘어갔고, 감독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소품비화: 13년 만에 돌아온 구두
도로시가 신는 그 빨간 구두, 원작 소설에서는 사실 은색이었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쓴 원작에서는 은구두였는데, 영화로 옮기면서 제작진이 색을 바꿔버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막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테크니컬러 촬영 기술로 노란 벽돌길과 대비를 극대화하려면 은색보다 강렬한 빨간색이 훨씬 유리했던 거다. 내가 보기엔 이 결정 하나가 영화의 상징성을 완전히 바꿔놨다. 지금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리면 다들 루비 슬리퍼를 먼저 떠올리는데, 원작 그대로 은구두였다면 이 정도로 각인되진 않았을 것 같다. 이건 좀 의외였는데, 소품 하나가 원작을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각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서 더 흥미로웠다. 실제로 이 신발은 촬영에 쓰인 몇 벌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그중 한 벌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단순한 영화 소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됐다. 2005년에는 미네소타의 한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다른 한 벌이 통째로 도난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는데, 이 신발은 13년이 지난 2018년에야 FBI 수사를 통해 되찾았다. 이후 경매에 나왔을 때 낙찰가가 2천8백만 달러를 넘었다고 하니, 소품 하나의 몸값이 어느 순간 영화 자체의 명성을 앞질러 버린 셈이다.
요약: 원작에서는 은색이었던 구두가 테크니컬러 효과를 위해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2005년 도난당한 한 벌은 13년 만인 2018년에야 FBI 수사로 돌아왔다.
흥행비화: 잘릴 뻔한 노래 한 곡
오버 더 레인보우는 지금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곡으로 꼽히지만, 처음에는 제작사 쪽에서 이 장면을 통째로 빼려고 했었다. 캔자스 장면이 너무 길어진다는 이유였고, 주디 갈런드가 헛간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설정이 격에 안 맞는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프로듀서 아서 프리드와 감독 빅터 플레밍이 끝까지 밀어붙여서 겨우 살아남은 곡이 결국 그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하마터면 못 들을 뻔했던 노래라는 걸 알고 나니, 이 장면을 보는 감정이 확실히 달라졌다. 흥행 성적도 지금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개봉 당시에는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서 적자를 봤고, 1949년 재개봉에서야 겨우 손익을 맞췄다고 한다. 심지어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같은 배급사인 MGM을 통해 극장에 걸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게 돌아갔다. 두 영화가 한 해에, 한 배급사를 통해 나와서 서로 경쟁했다는 사실 자체도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정작 이 영화를 지금의 명작 반열에 올려놓은 건 극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이었다. 1956년 CBS가 이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처음 방영했고, 이후 해마다 명절 무렵 반복해서 틀어주는 게 하나의 관례처럼 자리 잡으면서 세대를 거쳐 계속 발견되는 영화가 됐다. 개봉 당시의 성적표만 봤다면 이 정도로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요약: 오버 더 레인보우는 통편집될 뻔했다가 결국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이 영화를 지금의 명작으로 만든 건 극장이 아니라 1956년 시작된 텔레비전 방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