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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층 소녀와 사랑에 빠진 소년, 그리고 언젠가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꿈.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위대한 쇼맨은 19세기 미국의 흥행사 P.T. 바넘의 삶에서 출발해, 서커스라는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화려한 뮤지컬로 그려낸다. 개봉 이후 OST가 오랫동안 음원 차트를 지킬 만큼 노래의 힘이 강한 영화다. 처음엔 휴 잭맨의 무대와 귀에 꽂히는 노래들에 빠져 정신없이 봤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고 나면, 이 화려한 쇼 뒤에 무대 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오래 남는다.
성장서사: 인정받고 싶었던 쇼맨
바넘은 평생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 상류층인 채리티의 아버지에게 무시당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닌다. 직장에서 해고된 뒤 그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모아 쇼를 열기로 한다. 수염 난 여인, 키가 아주 작은 남자, 몸집이 거대한 남자, 공중그네를 타는 남매까지. 세상이 숨기고 외면하던 사람들이다. 그의 쇼는 비평가들의 혹평 속에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크게 성공한다. 그런데 성공할수록 바넘의 욕망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상류층에게 인정받기 위해 유럽의 유명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를 데려와 순회공연을 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쇼를 함께 만든 단원들을 점점 외면한다. 상류층 파티에서 단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는 장면이 그 결정적인 순간이다. 생각할수록 바넘의 성장은 아이러니하다. 무시당하던 사람이 성공하자, 이번엔 자신이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의 진짜 성장은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시작된다. 인정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오는 거였다.
요약: 평생 상류층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바넘은 성공 뒤 제니 린드의 공연에 매달리며 단원들을 외면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진짜 인정은 처음부터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걸 깨닫는다.
미학: 노래로 터지는 감정
이 영화에서 노래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는 장식이 아니라, 감정이 터지는 순간 그 자체다. 바넘이 아내 채리티와 옥상에서 미래를 꿈꾸며 부르는 노래는 가난 속에서도 반짝이던 두 사람의 마음을 담고, 필립과 바넘이 술집에서 주고받는 노래는 두 사람이 손을 잡는 거래를 리듬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필립과 앤이 텅 빈 서커스장에서 공중그네를 타며 부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계급과 인종이라는 벽 때문에 끝내 닿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공중을 오가는 그네의 움직임과 함께 그려진다. 손이 닿았다가 다시 멀어지는 그 동선 자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준다. 다시 보면 이 영화의 미학은 사실주의와 거리가 멀다. 시대 배경은 19세기인데 노래는 현대적인 팝이고, 무대는 현실보다 훨씬 화려하다. 하지만 바로 그 과장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쇼맨의 이야기를 쇼처럼 들려주는 것. 관객은 그 화려함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더 크고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요약: 이 영화의 노래는 감정이 터지는 순간 그 자체로, 필립과 앤의 공중그네 장면처럼 계급과 인종의 벽 앞에서 닿을 듯 멀어지는 마음을 화려한 무대 미학으로 크고 선명하게 전달한다.
주제: 이게 바로 나라는 외침
상류층 파티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단원들은 그 문 앞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수염 난 여인 레티가 앞장서고, 단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보탠다. 숨지 않겠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이게 바로 나라고. 이 영화를 대표하는 노래 디스 이즈 미가 흐르는 순간이다. 이 장면이 특별한 건, 그동안 바넘의 쇼에서 구경거리로 소개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스스로 무대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데려온 건 바넘이었지만, 그들을 일으켜 세운 건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바넘이 아니라 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 역사 속 바넘은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돈을 번 흥행사로서 비판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어두운 면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다시 썼다. 하지만 디스 이즈 미가 전하는 메시지만큼은 영화 밖으로 걸어 나와 많은 사람에게 닿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숨어야 했던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서도 된다는 위로.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큰 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