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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를 완전히 흐트러뜨린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신선하다.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낯선 충격이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크게 바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그 신선함 뒤에 숨은 제작 과정의 이야기들도 만만치 않게 흥미롭다.
캐스팅: 한물간 배우의 재기
펄프 픽션이 나오기 전 존 트라볼타는 업계에서 한물간 배우로 여겨지고 있었고, 사실 초기 캐스팅 리스트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런데 트라볼타의 오랜 팬이었던 타란티노가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중개를 부탁해서 겨우 만남이 성사됐다고 한다.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트라볼타라는 배우 자체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와 식사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캐스팅을 결정하기 전에 배우와 개인적으로 유대감을 쌓고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타란티노만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브루스 윌리스는 각본을 읽고 빈센트 역을 원했지만, 타란티노는 이미 그 역할을 트라볼타로 정해둔 상태여서 대신 복서 부치 역을 제안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접근 방식이 신기하다. 오디션 연기력보다 사람 자체를 먼저 보는 감독이라니, 결과적으로는 이 선택이 트라볼타의 커리어를 통째로 되살려냈고 이후 겟 쇼티, 브로큰 애로우 같은 후속작으로도 이어졌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배우가 이 영화 한 편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는 게, 지금 봐도 꽤 극적인 반전이다. 참고로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줄스가 읊는 그 유명한 성경 구절도, 사실은 실제 에제키엘서 원문과는 다른 문장이다. 타란티노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보던 일본 영화에 미국 배급사가 임의로 붙인 자막 문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잭슨 본인도 이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완벽해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려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요약: 캐스팅 리스트에도 없던 존 트라볼타는 타란티노가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를 통해 직접 만남을 주선하면서 극적으로 캐스팅됐다.
흥행: 제작비 대비 초대박
이 영화의 제작비는 800만 달러였는데, 전 세계 수익은 2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독립영화 치고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적이다. 제작사인 미라맥스로서도 이 정도의 흥행은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뒤죽박죽 섞인 시간 순서와 B급 영화 특유의 정서를 살린 구성이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이런 비선형 구조는 자칫하면 관객을 혼란스럽게만 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그 혼란 자체를 재미의 일부로 만들어버렸다. 보고 나서 순서를 다시 머릿속으로 재구성해보는 재미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게 이 영화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공식대로 가지 않아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례라고 본다. 제목에 들어간 펄프라는 단어도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하던 값싼 잡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영화 특유의 거칠고 과장된 정서가 그 옛날 잡지들의 느낌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약: 제작비 800만 달러의 저예산 독립영화였던 펄프 픽션은 세계적으로 2억 달러 넘는 수익을 올렸다.
수상: 칸을 사로잡은 구성
199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도 이 영화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세 가지 이야기가 시간 순서를 벗어나 서로 얽히는 구성은 당시 기준으로도 파격적이었고, 이 실험적인 형식이 오히려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건 좀 의외였는데, 예술영화 성향이 강한 칸에서 갱스터와 마약, 폭력이 뒤섞인 이야기가 최고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사무엘 L. 잭슨이 읊는 성경 구절 대사도 유명한데, 사실 실제 성경과는 뒷부분만 같고 나머지는 다르다고 한다. 타란티노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일본 액션영화의 미국 수입판에 배급사가 임의로 붙여놓은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니, 원전을 알고 나면 더 흥미로워지는 대사다. 우마 서먼 역시 이 작품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가 됐고, 이후 킬빌 시리즈에서 다시 타란티노와 호흡을 맞추게 된다. 장르 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의 경계를 흐려놓은 셈이다. 이 영화는 30주년을 맞아 트라볼타와 서먼, 잭슨, 케이틀 등 주요 배우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 30년이 지나도 이 정도로 배우들이 모일 수 있는 영화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