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의 성공담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사실 관객마저 함께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연출로 조현병이라는 질환을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처음 봤을 땐 그 반전에 완전히 허를 찔렸는데, 반전을 알고 다시 보니 이번엔 다른 이유로 또 놀랐다. 복선이 진짜 촘촘하게 깔려 있더라. 결말을 알고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경험이 이렇게까지 다른 영화를 볼 때가 드물다. 연출: 관객도 함께 속은 망상 천재 수학자 존 내시는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두뇌로 주목받지만, 동시에 사교성이 부족하고 괴팍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그가 룸메이트 찰스, 정부 요원 파처, 그리고 어린 조카와 맺는 관계를 아주 오랫동안 실제 현실처럼 보여준다. 관객은 존 내시와 마찬가지로 이 인물들이 실존한다고 믿은 채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후반부에..
첫 편이 한 남자가 대부가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그 자리를 물려받은 아들이 무엇을 잃어가는지를 보여준다. 1편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오히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챙겨봤는데, 두 시대를 오가는 구성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속편이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사례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서사구조: 나란히 놓인 두 인생 이 영화는 두 개의 시간대를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한쪽에는 1901년 시칠리아에서 가족을 잃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온 어린 비토가 뉴욕 빈민가에서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이 담겨 있고, 다른 한쪽에는 1958년부터 1960년 사이, 이미 대부의 자리를 물려받은 마이클이 네바다..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상상력 넘치는 설정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질투를 넘어서는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다.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기술적인 의미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시 보면 이야기 자체도 허투루 만든 구석이 하나도 없더라. 기술이 아무리 새로워도 결국 이야기가 부실하면 오래 못 간다는 걸, 이 영화가 30년 가까이 증명하고 있다. 후속편들이 이어져도 이 1편이 여전히 원형으로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체성: 장난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다 우주 특수요원이라 믿고 있던 신형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는, 자신이 진짜 우주비행사가 아니라 그저 장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손에 날개가 있고 레이저 광선을 쏠 수..
외계인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결국 사랑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낼 줄 아는 것이라는 조용한 결론에 다다른다. 어릴 때는 그냥 신기한 외계 친구 이야기로만 봤는데,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이게 은근히 이별에 관한 영화였구나 싶더라. 화려한 특수효과보다 그 안에 담긴 정서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게, 이 영화가 몇 십 년째 회자되는 이유 아닐까. 내적갈등: 외로운 소년이 만난 친구 엘리엇은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뒤, 어머니와 형제들 틈에서도 어딘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소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구에 홀로 남겨진 외계 생명체를 우연히 발견하고, 이 존재를 가족들 몰래 숨기며 돌보기 시작한다. E.T.는 엘리엇에게 단순한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그가 느껴온 외로움을 채워주는 진짜 친..
지브리 작품 중에 어릴 때 봤을 때와 어른이 되어 다시 봤을 때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 영화도 드물다. 그래서 이번엔 이야기 진행보다,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상징과 성장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정체성: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겪는 건 이름을 빼앗기는 일이다. 마녀 유바바는 계약서에 서명한 치히로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지우고 '센'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인다. 치히로라는 이름이 끝없는 깊음이라는 뜻을 가진 데 비해, 센은 그냥 숫자 천을 뜻한다. 의미를 지닌 존재에서 언제든 대체 가능한 숫자로 바뀌는 셈이다. 실제로 유바바의 온천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저마다 이름을 빼앗긴 채 일하고 있는데, 이는 이름을 잊는 순간 자기가 원래 누구였는지도 잊고 이곳을 영..
판타지 영화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결말을 가진 작품도 드물다. 이번엔 줄거리 정리보다, 이 영화가 인물의 내면과 상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내적갈등: 반지가 갉아먹은 마음 프로도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강해지는 인물이 아니라 점점 지쳐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지니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는 무게로 작동한다. 골룸이 이간질을 걸어와 프로도가 샘을 내쫓는 장면에서, 반지의 영향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프로도의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반지를 없애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 프로도 스스로는 반지를 파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반지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건 프로도가 아니라,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