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몇 개 있는데, 대부도 그중 하나다. 워낙 자주 언급되다 보니 안 본 사람도 결혼식 장면이나 말머리 장면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카메라 뒤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면, 영화 자체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는 걸 알게 된다. 촬영장 밖에서 벌어진 일들만 따로 정리해도 웬만한 영화 한 편은 나올 것 같다. 촬영비화: 협상은 마피아끼리 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마피아 보스끼리의 담판으로 마무리됐다. 이탈리아계 갱단을 다루는 영화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실제 뉴욕 마피아 보스였던 조 콜롬보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민권 연맹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었는데, 이탈리아계를 범죄자로만 그린다는 이유로 촬영장을 방해하고 장비..
영화 좋아하는 사람치고 벤허라는 제목을 모르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다만 대부분 딱 하나, 전차 경주 장면만 떠올린다는 게 좀 아쉽다. 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라 전차 경주는 사실 후반부 한 장면일 뿐이고, 그 앞뒤로 배신과 복수, 신앙 같은 무거운 얘기가 계속 쌓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액션 대작이라기보다 우정이 어떻게 무너지고 그게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를 다룬 이야기로 보는 쪽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용: 적의 아들로 살았다 로마 해군 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는 갤리선에 쇠사슬로 묶인 벤허에게 "우리가 널 살려두는 건 이 배를 위해 노를 젓게 하려는 것뿐이다. 노를 잘 저어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 짧은 대사인데 이 영화가 하려는 얘기를 미리 요약해 놓은 것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태워버린 세트장과 생존을 위한 선택 그리고 떠나면서 남긴 한마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9년 개봉작인데도, 고전 영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이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정주행하면서, 단순히 오래된 명작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기준으로 봐도 눈여겨볼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걸 느꼈다. 제작 방식과 인물 구성, 결말 처리까지 세 가지 측면에서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봤다. 제작비화: 몽땅 태워버린 세트장 러닝타임은 인터미션을 포함하면 네 시간에 가깝다. 이 정도 분량이면 지루한 구간이 나올 법도 한데, 막상 보면 그런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초반 바베큐 파티 장면에서부터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갈등 구도를 빠르게 정리해두고, 남북전쟁 발발 직전의 들뜬 분위기를..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법정 영화의 원형처럼 자주 언급되는 작품인데, 정작 법정 장면은 도입부 몇 분이 전부다. 나머지는 전부 좁은 배심원실 안에서, 열두 명이 한 소년의 유무죄를 놓고 언쟁을 벌이는 게 다다. 이렇게 단순한 설정만으로 지금까지 회자될 수 있었던 배경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화면 밖에서 벌어진 일들이 더 흥미롭다. 배심원들에게 끝까지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이유, 카메라가 영화 내내 조금씩 자리를 바꾼 방식, 그리고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고도 막상 극장에서는 힘을 못 썼던 사정까지 하나씩 짚어본다. 설정비화: 끝까지 이름이 없던 배심원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한 점 하나를 눈치채게 된다. 열두 명의 배심원 중 누구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서로를 "8번 배심원", "3번 배심원" 이런 식으..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을 스타로 만든 영화로 자주 소개되는데, 정작 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 사연들이 많다. 각본가의 이름 하나를 둘러싼 오랜 사연, 배우 한 명이 스스로 양보한 자리, 그리고 촬영 도중 우연히 나온 진짜 반응까지 짚어본다. 크레디트비화: 이름 없이 만들어진 걸작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원래 달튼 트럼보였다. 그런데 1953년 개봉 당시 크레디트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매카시즘이 한창이던 시절, 트럼보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였고, 자기 이름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료 작가 이언 매클렐런 헌터가 대신 이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크레디트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씁쓸했다. 실력이 있어도 정치적인 이유로 이름조차 내걸지 ..
시민 케인은 영화사에서 가장 자주 첫 손에 꼽히는 작품인데도, 정작 개봉 당시엔 이 정도로 평가받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완성된 영화 자체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리고 나온 뒤에 겪은 과정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감독에게 주어진 이례적인 권한, 개봉을 막으려 했던 거대 언론사, 그리고 한참을 잊혔다가 되살아난 평가까지 짚어본다. 계약비화: 다 맡겨버린 계약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을 만들 당시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그런데 RKO와 맺은 계약 조건을 보면 이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각본, 감독, 제작, 주연까지 전부 맡았고, 게다가 최종 편집권까지 보장받았다. 스튜디오가 신인 감독에게 이 정도 재량을 준 건 그 시절 할리우드에서는 ..